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찬송가 60장 영혼의 햇빛 예수님
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창세기 22장
-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려는 사라를 악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판단이 다른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마자 아브라함은 즉각 자신의 생각을 바꿉니다. 아브라함은 새벽에 일어나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게 됩니다. 그 결과 하갈과 이스마엘은 비통한 마음을 가지고 떠나왔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 보호하심 속에서 바란 광야에서 한 민족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았던 것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살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랄 땅에 살며 브엘세바에서 우물을 팝니다. 그러나, 그랄 왕 아비멜렉의 종들에게 그 우물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분쟁, 다툼을 선택하지 않고 그랄 왕에게 주지 않아도 될 소와 양, 일곱 마리 어린 암양을 주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그랄 왕을 비난했지만 한편 새로운 약속을 제시하며 그 문제를 덮은 것입니다.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 새로운 언약, 신약으로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암시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 모리아 산으로 가는 아브라함과 이삭
1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나사(נָסָה)는 냄새맡다, 시도하다, 시험하다, 위험을 무릅쓰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은 소와 양들을 그랄 왕에게 주며 살고 있는 땅과 자신이 파놓은 브엘세바, 우물의 사용권을 얻습니다. 아브라함이 주지 않아도 될 땅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그 우물 옆에 에셀 나무를 심은 이유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인도하심이 여전하다, 계속된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히브리어 엘로힘(אֱלֹהִים), 하나님이 히브리어 나사(נָסָה), 냄새맡다, 시험을 한다, 위험을 무릅 쓴다는 것입니다.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라카흐(לָקַח), 취하다, 잡다, 데리고 가다는 뜻의 단어이고 히브리어 나(נָא)는 명령이 포함되지 않는 애원, 원한다는 뜻의 단어이고 히브리어 올라(עֹלָה)는 제단 위에 드려진 것, 번제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라고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킹 제임스 영문 성경에서 전체의 뜻을 살리기 위해서 의역을 했는데 그 의역이 전체의 뜻을 살리지 못한것 같습니다.
22 Genesis(Hebrew)
- וַיֹּ֡אמֶר קַח־נָ֠א אֶת־בִּנְךָ֙ אֶת־יְחִֽידְךָ֤ אֲשֶׁר־אָהַ֨בְתָּ֙ אֶת־יִצְחָ֔ק וְלֶךְ־לְךָ֔ אֶל־אֶ֖רֶץ הַמֹּרִיָּ֑ה וְהַעֲלֵ֤הוּ שָׁם֙ לְעֹלָ֔ה עַ֚ל אַחַ֣ד הֶֽהָרִ֔ים אֲשֶׁ֖ר אֹמַ֥ר אֵלֶֽיךָ׃
이 구절은 접속사를 기준으로 3개의 문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이 그 아들, 독자, 사랑하는 이삭을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라카흐(לָקַח)는 잡다, 취하다가 아니라 데리고 가다는 번역이 타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이삭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했다, 히브리어 나(נָא), 명령이 아닌 애원한다,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뒤의 문장이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로 번역될 수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 모리아 땅을 향해 가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함께 데리고 가기를 원한 곳은 모리아 땅 어디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함께 여행을 하도록 권하신 것입니다.
세번째, 말씀하신 바로 그 산, 번제, 제단을 향해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이삭을 바치라고 번역할 수 없는 구절인 것입니다.
이어서 다시 번역을 하면 “하나님이 그 아들, 독자, 사랑하는 이삭을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모리아 땅을 향해 가라, 그리고, 말씀하신 바로 그 산, 제단을 향해 올라가라”라는 것입니다. 제단, 번제를 위하여 올라가라고 했을뿐 이삭을 바쳐라, 이삭을 희생시켜라,라는 문장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 제임스 영문 성경의 오역이 다른 성경 번역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친것 같습니다.
22 Genesis(KJV)
- And he said, Take now thy son, thine only son Isaac, whom thou lovest, and get thee into the land of Moriah; and offer him there for a burnt offering upon one of the mountains which I will tell thee of.
22 Genesis(NIV)
- Then God said, “Take your son, your only son, Isaac, whom you love, and go to the region of Moriah. Sacrifice him there as a burnt offering on one of the mountains I will tell you about.”
킹 제임스 영문 성경에서 오프 힘 데어(offer him there), 그곳에서 그를 드려라,로 번역을 하였고, NIV 영문 성경에서는 세크러파이스 힘 데어( Sacrifice him there), 그곳에서 그를 희생시켜라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번역은 아브라함의 말과 행동, 뒤 구절의 의미를 이상하게 변질시키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희생을 강조하려고 이렇게 번역을 했다면 오히려 아브라함과 이삭의 단란한 믿음의 여행을 오기, 억지, 호러, 공포로 바꾼 것입니다.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나아르(נַעַר)는 남자, 소년, 젊은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나귀에 묶었고 두 어린 남자와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을 향하여 갔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안장으로 번역될 단어가 없습니다. 또, 개역 개정 성경에서 두 종으로 번역을 하였으나 킹 제임스 영문 성경에서도 투 오브 히스 영 맨(two of his young men), 두 어린 남자,로 번역하고 있어 실제 이삭의 두 어린 친구일 수 있는 것입니다. 늙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이삭만 여행을 갈 경우 어린 이삭은 재미가 없는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린 이삭을 위하여 두 친구들을 함께 데려간 것으로 보입니다.
4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봤다고 합니다.
새벽 일찍 떠난 여행은 삼일이 되자 모리아 산을 멀리서 봤다고 합니다. 사람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는 대략 20~30Km 정도인데 삼일이면 대략 60~90Km 정도입니다.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그랄에서 모리아 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루살렘까지가 직선 거리로 대략 70Km 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이삭과 그 친구들을 데리고 삼일동안 적당하게 쉬면서 낮에는 걷고 밤에는 불을 피우고 야영을 하면서 목적지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이삭 친구들의 먼 여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5절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종들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귀와 함께 주저 앉아있는 두 아이들을 향하여 말을 합니다. 삼일동안 오래 걸어서 지친 상태여서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앉아있는 것으로 보이고 이미 밤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한 나와 아이, 이삭은 계속 가야하고 둘만 그 곳에 가서 경배하고 돌아오겠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루 더 지체하면 물과 음식이 떨어져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목적지가 멀리 보이자 쉬지 않고 아브라함과 이삭만 갔다 오겠다는 것입니다.
6절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했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개역개정 성경 번역과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원문에서는 두 아이와 나귀는 쉬도록 내버려두고 아브라함이 번제 나무를 들고 아들 이삭을 목마 태우고, 불과 칼을 손에 쥐고 둘이 하나가 되어 갔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야차드(יַחַד)는 결합, 연합, 함께, 하나됨이라는 뜻의 단어이고, 히브리어 셰나임(שְׁנַיִם)은 둘, 두 가지를 뜻하는 단어이고, 히브리어 하락(הָלַךְ)은 가다, 걷다, 나아가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둘이 하나가 되어 갔다는 표현과 아브라함이 번제 나무를 취하였다는 표현을 보면 “아들 이삭 위에 두었다”, 라는 문장이 아들 이삭에게 번제 나무를 지웠다,라는 표현으로 보기보다 아브라함이 걷기에 지친 어린 이삭을 업고갔다, 목마 태웠다는 표현이 맞을것 같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어린 이삭을 목마 태우고 번제 나무를 들고 손에 불과 칼을 들고 하나가 되어 걸어간 것입니다.
7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고 아버지가 답을 합니다. 아들 이삭이 아버지 보세요, 불과 나무는 있지만 번제할 양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으로 출발할때 번제할 나무는 가지고 갔지만 번제할 양을 데리고 가지 않은 이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다음 구절에서 밝힙니다.
8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갔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벤(בֵּן)은 아들, 소년 이라는 뜻의 단어이고, 히브리어 라아(רָאָה)는 보다, 왕의 얼굴을 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번제할 양을 데리고 가지 않은 이유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미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히브리어 벤(בֵּן), 아들, 이삭이 히브리어 라아(רָאָה), 번제할 양을 보게 된다,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업고 둘이 하나가 되어 계속 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 여행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시험이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통하여 번제할 양을 찾게 된다, 번제할 양이 준비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보게 된 양은 숫양이지만, 이 양은 훗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져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9절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 구절은 히브리어 원문에서도 매우 긴 문장입니다. 그러나, 두 부분으로 나눠서 보면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는 장면 하나와, 아들 이삭이 나무를 정돈하여 묶고 제단 위에 나무를 두는 장면이 하나입니다.
22 Genesis(Hebrew)
- וַיָּבֹ֗אוּ אֶֽל־הַמָּקֹום֮ אֲשֶׁ֣ר אָֽמַר־לֹ֣ו הָאֱלֹהִים֒ וַיִּ֨בֶן שָׁ֤ם אַבְרָהָם֙ אֶת־הַמִּזְבֵּ֔חַ
וַֽיַּעֲרֹ֖ךְ אֶת־הָעֵצִ֑ים וַֽיַּעֲקֹד֙ אֶת־יִצְחָ֣ק בְּנֹ֔ו וַיָּ֤שֶׂם אֹתֹו֙ עַל־הַמִּזְבֵּ֔חַ מִמַּ֖עַל לָעֵצִֽים׃
이 두 문단을 이어서 번역을 하다보니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나무도 정돈하고, 그 아들을 묶어 제단 위에 올려 놓았다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문단을 나눠놓으면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있고 아들 이삭은 나무를 정돈하여 묶고 제단 위에 올려두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번제를 위하여 준비하는 평범한 그림이지만 문제는 번제할 양이 없는 것입니다.
10절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했다고 합니다.
이 구절도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잘못된 번역으로 보입니다. 히브리어 샤라츠(שָׁלַח)는 보내다, 떠나게 하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원문대로 번역을 하면 아브라함이 자신의 손으로 아들에게 죽이는 칼을 취하도록 하고 보냈다, 샤라츠((שָׁלַח), 떠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들 이삭에게 칼을 쥐어주며 떠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잡으려고 했다,라고 보여지는 단어가 없고 반대로 히브리어 샤라츠(שָׁלַח)는 보내다, 떠나게 하다는 뜻의 단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 산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늦은 시간으로 보이고, 제단을 쌓고 나무를 정돈하여 묶어 제단 위에 올렸을때는 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 아들에게 칼을 쥐어주며 양을 구하도록 보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이삭이 양을 보게 된다, 찾게된다는 말씀을 믿은 것이고, 아브라함과 아들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11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다고 답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칼을 주어 보내려고 할때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하늘에서부터 불렀고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답을 한 것입니다.
12절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손을 대다는 뜻의 단어는 없습니다. 앞에 사용되었던 히브리어 샤라츠(שָׁלַח), 보내다, 떠나게 하다는 뜻의 단어가 다시 사용됩니다. 원문대로 번역을 다시 하면 여호와의 사자가 말씀하는데 아이의 손에 칼을 쥐어 보내지 말라, 그리고, 지금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히브리어 하사크(חָשַׂךְ)는 억제하다, 간직하다, 보류하다, 절제하다는 뜻의 단어인데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간직하지 않고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네 아들 독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아끼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아들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이 번제할 양을 주실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 이삭은 이런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이 번제할 양을 준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13절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타카츠(תַּחַת)는 아래쪽, 아래, 낮은 곳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올려 보게 되었는데, 수풀에 뿔이 걸려있는 숫양을 보게 되었고,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취하여 번제단에 올라갔고 아들은 그 아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아들을 대신하여,라고 볼 단어가 없고 히브리어 타카츠(תַּחַת), 아래쪽에 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단 위에 숫양을 올리고 아들 이삭은 그 제단 아래에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14절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된다,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라아(רָאָה)는 보다, 왕의 얼굴을 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곳을 여호와 이레(יִרְאֶ֑ה)라고 불렀는데 동사 원형이 히브리어 라아(רָאָה), 보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여호와를 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뜻이되고, 그 날에 여호와의 산에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 구절과 이어서 생각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나무만 가지고 모리아 산을 향하여 가라고 말씀하셨고, 번제할 제물은 아들 이삭이 보게 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 명령을 따라 아들 이삭과 두 친구들, 번제할 나무만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고, 그 곳에 도착하자 망설임없이 번제단을 쌓았고 아들 이삭은 나무를 정돈하여 묶어 번제단 위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양을 보게 된다, 만나게 된다 말씀을 믿고 아들 이삭에게 칼을 쥐어주며 보내려고 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즉각 아브라함이 하고자 하는 일을 중지시키고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된다,라는 번역보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된 것이 나타난다,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15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렀다고 합니다.
번제를 드리고 난 이후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다시 아브라함을 부른 것입니다.
16절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말씀을 주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독자 아들을 간직하지 않고 번제물을 준비하게 하기 위하여 보냈다, 떠나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것입니다.
17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바락(בָּרַךְ)은 무릎을 꿇다, 절하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 복을 준다,라는 표현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복은 곧 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히브리어 야라쉬(יָרַשׁ)는 취하다, 가져가다, 소유하다, 점령하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돌보셔서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되는데, 네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 후손은 실제 혈족을 의미도 하지만 성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믿음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아지는데 그들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 히브리어 야라쉬(יָרַשׁ), 취한다, 점령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의 적은 거짓말, 비진리, 악행인데 그 거짓말, 비진리, 악행을 제압한다는 것입니다.
18절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든 민족이 네 씨 안에서 히브리어 바락(בָּרַךְ),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땅에서 나의 말을 들었던 결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믿음의 후손은 적의 문을 차지할뿐 아니라 모든 민족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 이유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바락(בָּרַךְ)은 복을 받는다, 하나님이 보살피신다는 뜻으로 볼 수 없고 원래 뜻대로 무릎을 꿇는다가 맞는 것입니다. 천하 만민이 아무 이유없이 복받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19절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종들로 번역되기 어렵고 아브라함은 남겨졌던 아이들에게 돌아갔고, 함께 떠나 브엘세바 우물에 갔고 그곳에 아브라함이 거주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광야 쪽으로, 더욱 척박한 곳으로 이주를 했는데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과의 경험으로 인하여 더욱 확신 가운데 살았던것 같습니다.
2. 브두엘과 리브가
20절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고 합니다.
밀가는 죽은 하란의 딸이고 조카 롯의 오누이입니다. 밀가가 삼촌 나홀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21절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22절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고 합니다.
나홀의 아들이 우스, 부스, 그므엘, 게셋, 하소, 빌다스, 이들랍, 브두엘 8명이고 그 어머니는 밀가인 것입니다.
23절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다고 합니다.
막내로 보이는 브두엘의 딸이 리브가인 것입니다. 리브가는 훗날 이삭의 아내가 됩니다.
24절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필레게쉬(פִּילֶגֶשׁ)는 첩, 내연의 처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르우마는 나홀의 첩인데 데바, 가함, 다하스, 마아가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나홀의 아들들을 열거하는 이유는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갈대아 우르에서 많은 삼촌과 친인척들 가운데 자랐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아들 이삭과 함께 번제를 드리기 위하여 모리아 산을 향합니다. 아브라함은 번제 나무와 칼은 준비하지만 양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아들 이삭이 번제할 양을 보게 된다, 찾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칼을 쥐어주고 번제할 양을 찾도록 내보내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아브라함을 불러 아들 이삭을 내보내는 것을 멈추게 하고, 숲에 뿔이 걸려 붙잡힌 숫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번제할 양을 보여주신 것,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 번제를 위한 양, 하나님이 준비하신 양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믿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온 교회 성도들도 믿음의 순종으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영생얻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