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찬송가 265장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요한계시록 6장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사도 요한은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리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사도 요한의 이런 강조는 복음으로 인하여 고난, 핍박을 받는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굳건함, 영원함을 깨달아 은혜와 위로를 얻기 위함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위로와 은혜가 없다면 복음으로 인한 시련, 어려움, 핍박이 현재 없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악하지만 그 불의를 못본체 피해다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를 향하여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합니다. 불의를 못본체 하지말고 사서 고생하는, 고난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1. 첫번째 인, 흰 말
1절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고 합니다.
일곱 인이 차례로 떼어지는데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를 내었는데, 그 소리는 “오라”는 것입니다. 주목하여 볼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2절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다고 합니다.
말을 탄 자가 차례로 4명이 나오게 되는데 이 말을 탄 자에 대하여 간략하게 사도 요한은 설명을 합니다. 이 간략한 설명들을 통하여 유추해보면 AD68년 있었던 로마 네 황제의 해, 혼돈으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네로 황제의 자결 이후 네 황제들이 차례로 등장했는데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봉인을 떼는 것과 함께 차례로 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당시 편지를 읽었던 성도들은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간섭, 섭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일들이지만 이러한 일들이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AD68년 6월 9일 황제 네로는 반역에 내몰리고 스스로 자결을 합니다. 이후 원로원은 총독 갈바를 황제로 추대하지만 관할지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여러 정적들을 죽이며 돌아옵니다. 흰말을 탄 자로 로마 총독 갈바로 추정하면, 갈바가 군대, 활, 무력을 가졌는데 원로원의 추대로 황제, 면류관을 받고 로마로 돌아오며 정적들을 죽이는, 이기고 또 이기는 내전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네 황제의 해에 등장하는 인물은 갈바를 비롯하여 차례대로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 입니다.
#2. 두번째 인, 붉은 말
3절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고 합니다.
두번째 생물이 마찬가지로 크게 소리를 내며 오라, 주목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을 찬양하다가 봉인을 차례로 떼고, 차례대로 네 말을 탄 사람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라는 강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4절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다고 합니다.
갈바의 황제 즉위에 불만을 가진 라인 강 군단이 총독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하여 로마로 진군을 합니다. 갈바의 황제 즉위에 불만을 가졌던 오토는 로마에 있던 근위대의 추대로 새황제가 되고 로마를 빠져 나가던 갈바를 붙잡아 처형하게 됩니다. 오토는 근위대로부터 새 황제로 허락을 받아 갈바를 죽여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렸고, 로마로 돌아오는 비텔리우스와 황제의 자리를 놓고 협상을 벌이지만, 로마인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했고, 결국, 비텔리우스와의 전쟁에서 4만명 가까이 죽고 패하자 동족끼리 전쟁을 포기하고 칼로 자기 목을 찔러 자결을 한 것입니다.
붉은 말을 탄 자, 오토는 로마 근위대의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고 그 자신도 칼을 받은 것입니다. 오토는 막강한 군대로 로마로 진군하는 비텔리우스와의 전쟁에서 초기에는 이겼으나 패주하는 비텔리우스 군을 추격하지 않았고 이어진 전투에서 재정비한 비텔리우스 군에 패전하자 자신은 자결하고 남은 자들은 비텔리우스에게 달려가 충성을 맹세한 것입니다.
#3. 세번째 인, 검은 말
5절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다고 합니다.
로마에 입성한 비텔리우스는 오토를 따랐던 도나우 군단의 백인 대장들을 처형하고 병사들은 크레모나 시의 원형경기장 공사에 강제 투입을 시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손에 든 것이 저울이라고 번역하였으나 헬라어 원문에는 쥐곤(ζυγον), 포크 형태의 체벌 도구, 목줄, 멍에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또, 킹 제임스 영문 성경에서는 어 페어 오브 발란서(a pair of balances)로 번역되어 있어서 저울로 번역을 하였으나, 실제는 요크(yoke), 멍에가 저울과 비슷하여 잘못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쥐곤(ζυγον)은 짐승에게 씌우는 멍에로 고된 노역, 노동을 부과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 비텔리우스는 자신에 반대했던 오토의 군대, 도나우 군단의 병사들에게 노역의 멍에를 지웠던 것입니다.
비텔리우스는 로마 귀족의 자식으로 갈바에 의해서 게르마니아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갈바에 불만을 품은 라인강 군단들에 의해 운좋게 황제로 추대되지만 로마로 입성한 이후 환락, 축제를 좋아하고 식탐으로 국고를 낭비하게 됩니다.
6절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했다고 합니다.
네번째 짐승 사이에서 음성을 듣는데,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와 보리 석 되라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3.8g 은화로 노동자 1일 품삯입니다. 대략 오늘 물가로 계산을 하면 밀 한 되 1Kg 23000원이고 하루 임금 10만원이면 정상적인 물가보다 5배나 높은 것입니다.
물가가 이렇게 높았던 이유는 비텔리우스 당시 내전으로 국고가 피폐하였으나 한 연회에 생선 2천마리, 새 7천 마리를 요리 재료로 사용할 정도로 사치를 하여 통화가 넘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고 탕진, 물가 폭등의 와중에도 비텔리우스는 감람유와 포도주를 물리치지 않고 연회를 이어갔으니 매우 심각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네번째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로 입성할때 비텔리우스는 성난 군중들에 의해서 목이 잘려나간 것입니다.
#4. 네번째 인, 청황색 말
7절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라고 합니다.
사도 요한은 차례로 등장하는 말을 탄 사람을 지켜보고 있고 등장할때마다 차례대로 짐승이 와서 지켜보라, 라고 합니다. 매번 지켜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보좌에 앉으신 이가 하나님, 봉인을 떼는 분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과거와 현재 일어나는 모든 일, 고난과 핍박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과 이 편지를 받아든 성도들은 자신의 모든 삶의 시간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것 같습니다.
8절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였다고 합니다.
청황색 말로 번역을 하고 있으나 원문대로면 창백한 말로 번역될 수 있고, 그 탄자의 이름이 사망이라고 합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 기사 계급 출신으로 네로 황제의 자살 이후 벌어진 내전을 종식시키고 황제로 등극하게 됩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유대 로마 전쟁의 지휘관으로 전쟁을 치르던중 황제로 추대되었고, 아들 티투스를 통하여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살육을 하게 됩니다.
말을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고 음부, 지옥이 그의 뒤를 따른다고 합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예루살렘에서도 많은 유대인을 죽였고, 로마에 황제로 입성하고 나서도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을 죽이는 죽음의 황제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권세는 네 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칼, 검과 흉년과 사망, 땅의 짐승들이라고 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 땅 사분의 일의 권세라고 번역된 부분은 킹 제임스 영문 성경에서 더 포 파트 오브 더 어쓰(the fourth part of the earth)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정관사 더(the)를 사용하여 땅의 네 부분의 권세,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른 번역일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곧장 검, 흉년, 사망, 짐승으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스파시아누스의 권세, 권력은 네 부분으로 주어졌는데, 네 부분의 관점으로 보면, 첫번째가 유대 로마 전쟁을 이끌고 있는 원정 군대의 사람을 죽이는 검, 칼이고, 두번째가 예루살렘성을 장기간 포위하여 생겨난 극심한 배고픔, 기근이고, 세번째가 잔혹한 죽음, 네번째가 베스파시아누스를 따르는 짐승들, 권력자들, 조력자들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에게 당시 이러한 네 가지가 권세로 주어졌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잔인하게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용하는 듯한 이런 상황, 문제에 대한 질문은 오늘 시대에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자세히 뜯어보면 죄 없는 사람들이 살육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살육전이 대부분이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생명을 악한 자들에게 내어주는 순교는 1세기 당시에도 드물게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당시 복음으로 인하여 이미 여러 순교자가 생겨난 이후에 기록된 편지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의 죽음의 이유를 보면 부패, 타락, 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고, 그런 혼란 가운데, 그런 사람들 가운데 성도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니, 칼과 기근과 죽음과 짐승들이 다스리는 나라 가운데서도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전진해야 하는 것이 숙명인 것입니다.
#5. 다섯번째 인, 신원
9절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
다섯째 인을 뗄 때부터 더 이상 말을 탄 인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가 집권한 이후 두번째 세습 왕조인 플라비우스 왕조를 창건하고 3대에 걸쳐 30년간 통치했기 때문입니다.
베스파시아누스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입니다. 첫째 티투스가 유대 로마 전쟁의 사령관으로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도록 폐허를 만들었으나 황제 즉위 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하고 둘째 도미티아누스가 즉위하게 됩니다. 도미티아누스는 로마의 여러 신들을 숭배하게 했고 이후 로마 전역에 자기 자신 황제 숭배를 강요하게 됩니다. 황제 숭배를 강요당했던 1세기 교회 성도들은 순교자를 배출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예수 탄생과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승천의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 순교자들이 제단 아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10절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라고 묻게 됩니다.
순교자들의 영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 그 제단 아래에서 신원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언제까지 땅에 있는 악인들을 심판히지 않고 내버려두십니까,라는 물음인 것입니다. 세상이 악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데 악인들을 왜 도륙하지 않으시고 방치하시는가,라는 질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신 통치자, 주인이신데 왜 악인들의 악행을 방치하십니까,라는 질문인 것입니다.
이런 의문, 질문이 극에 달한 경우가 2차 세계 대전의 상황입니다. 특히 독일 나찌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어간 기독교인에게는 온통 이런 질문 속에 살다 갔음이 분명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답을 요한계시록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11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합니다.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기, 흰 예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 예복은 이 순교자들이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집에 있는 잔치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상징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예복을 입은 이 성도들에게 잠깐 동안만 쉬라고 하십니다. 잠깐 동안인데 그 잠깐 동안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주의 종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와 그 주의 종과 함께 교회를 이루었던 형제들이 순교자들과 마찬가지로 순교하고 그 때가 차기까지라고 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 그 수가 차기까지라고 번역을 하고 있지만 킹 제임스 영문성경, 헬라어 원문을 참조하면 그 수가 차기까지라고 번역할 만한 단어나 문장 구조는 보이지 않고, 문맥에서 강조하고 있는 잠깐 동안, 시간, 그 때가 차기까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Revelation 6
11. And white robes were given unto every one of them; and it was said unto them, that they should rest yet for a little season, until their fellowservants also and their brethren, that should be killed as they were, should be fulfilled.
예수님의 재림, 하나님의 심판, 세상의 종말의 때에 대하여 아직, 그러나 곧이라고 설명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재림때까지 늘 악할 것이고 그래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악한 세상과 맞서며 살게되면 순교자가 생겨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순교자의 숫자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때가 되면, 때가 차면 하나님의 최후 심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먼저 들어간 순교자, 성도들이 흰 예복을 입고 잠깐 동안 기다리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매우 잠깐 동안이기 때문에 개인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은 분명히 다르지만 실제적으로 같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 신원하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는 믿음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의 구원의 확실성을 보여주고 있고 이 장면을 통하여 위로와 격려를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악한 자들을 즉각 처단하여 순교자들의 억울함을 신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실제는 잠깐 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는 것입니다.
#5. 여섯번째 인, 큰 지진
12절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AD 79년 6월 베스파시아누스가 사망하고 티투스가 즉위하는 그 해 8월 로마의 남쪽에 위치한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인근 도시 폼페이가 폐허가 됩니다. 알프스 히말라야 조산대에 이탈리아 로마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지진도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AD 115년 안티오키아 대지진은 진도 11로 동시에 26만명이 사망을 하게 됩니다. 안티오키아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들은 성도가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던 안디옥 교회가 있는 곳입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고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었다고 하는데,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여 화산재가 하늘로 솟구치면 모두 볼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화산재는 지상 10Km 대류권으로부터 50Km 아래인 성층권까지 치솟아 올라 오랜 시간 머물게 되는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게 만들 수 있고, 밤에 달은 피 같이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 재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장차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주는 것이고, 인간의 노력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내가 잘나서 이렇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13절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요한 계시록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데 너무 구체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을 경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666이라든지 144000이라든지 매우 구체적인인 숫자이지만 이 편지를 받아든 독자, 1세기 당시 성도들의 눈 높이에서 이해를 해야하고 두번째가 이 편지를 보게될 우리들의 형편, 사정에 대한 것을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매우 가까운 과거나 현재, 매우 가까운 미래에 일어나거나 일어날 사실을 기술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는 현상은 오늘날 천문학, 우주 관측 기술로 운석우로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2013년 2월 15일 러시아 첼랴빈스크 주 주변에 떨어진 운석우의 폭발로 1600명이 다치고 6000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기도 합니다.
실제 하늘의 별은 항성과 행성으로 구분을 하는데 태양계에서는 태양이 항성이고 태양 주위를 도는 별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등이 행성이 됩니다. 태양계 밖의 별들은 수도 없이 많은데 이 별들이 지구와 충돌하거나 떨어진 일은 현재까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큰 바람에 흔들려 설익은 채로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운석우에 가까운 것입니다.
1세기 로마 당시에 운석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전세계 분포한 운석 충돌 분화구를 보면 오랜 시간 운석이 땅위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운석우와 같은 자연 재해를 요한계시록에서 기록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 땅의 불완전함, 미완성을 가르치고 있고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날, 세상의 마지막 날, 종말이 무화과의 성숙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이 땅에 살면서 더욱 성숙한 삶, 완전한 삶을 살기를 바라지만 세상의 종말, 개인의 종말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현재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약속한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되면 하늘의 별, 행성, 항성이 그 자리에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은 현재적 자연 재난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한 종말, 세상의 마지막의 날을 함께 보게 하는 것입니다.
14절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졌다고 합니다.
하늘이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처럼 양쪽으로 나눠졌다고 합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안된다고 했을때, 그 말이 생긴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하늘이 두 쪽으로 보이는 천문 현상은 해가 수평선에 있어나 산 뒤에 있을때 가끔 목격이 됩니다. 하늘에 해가 비치는 쪽은 밝고 해가 가린 쪽이 매우 어두워서 마치 하늘이 두 쪽이 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진과 화산 폭발, 화산재, 구름과 같은 기상 현상이 겹치면 하늘이 양쪽으로 나뉘어져 두루마리가 말리는듯이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문 현상은 평온한 때가 아니라 화산, 지진 등 극심한 자연 재난 상태에서 목격되는데 요한계시록에서 이러한 자연 재난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산과 섬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그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오랜 시간을 걸쳐서 이동도 하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1세기 당시 성도들이 알고 있는 자연 재난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임박성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이 언제 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1세기 핍박받는 성도들에게 종말이 언제일지 모른다, 매우 가깝다는 사실은 불안, 초조가 아니라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는 방탕한 성도에게는 종말이 구원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5절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었다고 합니다.
재난 상황에서 황제도, 왕족들도, 장군들도, 부자나 강한 자들,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을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AD 115년 안티오키아 대지진 당시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는 원정 도중 안디옥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는데, 대지진으로 건물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창문을 타고 도망쳐 겨우 부상없이 살아남게 됩니다.
자연 재난 상황에서도 황제나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 종, 자유인이 화산 폭발, 지진을 피하여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야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1세기 당시 로마는 신분, 계급이 있던 사회입니다. 차례대로 황제,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가 있고 그들은 종들을 부렸습니다. 황제도,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도 아니고 종도 아닌 사람들이 있었는데 자유인입니다. 오늘 근대 자유민주국가에서 1세기 로마에 있었던 계급 가운데 하나의 계급만이 존재하는데 자유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황제도,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 종도 아닌 자유인으로 살며 복음을 전했고,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자유인으로 부르셨다고 선언합니다. 이 자유인에게도 재난이 닥치는데 이 땅의 유한함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024년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대부분 자유인으로 부르셨습니다. 황제도 아니고 왕족, 장군, 부자도 강한 자도 아니지만 종도 아닙니다. 그 어떤 삶을 부여 받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엉뚱하게 자기의 마음 가는대로 살고,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살면 안되는 것입니다.
16절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고 합니다.
현실의 재난, 재앙의 상황에서 궁극적 심판, 영원한 심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과 바위로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려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분노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황제나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 종과 자유인 그 누구도 화산 폭발과 지진과 같은 자연 재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예정한 종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는 분노,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7절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현실적 재난과 궁극적 하나님의 종말 심판이 겹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현실 왕과 대통령,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현재적 심판이 늘 있습니다. 그 현재적 심판이 우리 마음에 들지 않을뿐이지만 반대로 나의 허물, 죄에 대하여 엄중한 심판이 닥치는 것은 원치않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 속에 주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며 살고 있는 성도는 사실은 주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심판, 분노에서 비켜설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분노가 비켜 선 것입니다.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는 악한 세상에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이 악한 세상에 주를 믿는 성도로 부르셨고 은혜로 보살핌을 받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믿음의 선배들, 신앙의 선배들을 쫓아서 늘 오늘을 마지막으로 알고 주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 자주 모이고 말씀의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의 날, 주의 날이 두려운 심판과 재앙이 아니라 구원과 영생의 날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